탄소중립은 이제 “좋은 일 하자” 수준이 아니라, 산업의 룰을 바꾸는 규제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변화가 빠른 곳이 항공유 시장이고, 최근 가장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가 SAF(지속가능 항공유) 입니다. 이 글에서는 SAF가 왜 뜨는지, 시장 구조가 어떻게 바뀌는지 핵심만 새 관점으로 정리합니다.
항공은 왜 ‘연료 전환’이 먼저일까?
육상 운송은 전기차·수소차로 갈 수 있지만, 항공은 조건이 다릅니다. 장거리 비행은 높은 에너지 밀도가 필요하고, 무게가 늘어나면 효율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여기에 안전 기준까지 고려하면 “배터리로 대형 항공기를 바로 대체”하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항공 업계는 기체를 통째로 바꾸기보다, 연료 체계부터 바꾸는 방향으로 현실적인 해법을 찾게 됩니다.
SAF는 ‘새 엔진’이 아니라 ‘새 조달 기준’에 가깝다
SAF는 한마디로 기존 항공기와 공항 인프라를 유지하면서, 더 낮은 탄소 발자국을 목표로 하는 연료 체계입니다. 중요한 건 “완전히 다른 연료로 갈아타는 것”보다 기존 항공유 공급망에 SAF가 섞이면서 시장의 표준이 재정의된다는 점입니다.
원료는 다양하게 확장되는 흐름인데, 초기에는 폐식용유 같은 바이오 기반 자원이 주로 언급되고, 앞으로는 재생에너지와 CO₂를 활용한 합성연료(e-fuel 계열)처럼 기술 의존도가 높은 방식도 비중이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즉 SAF는 단순 제품이 아니라, 원료 확보→생산 공정→인증/추적→공급 계약이 붙어 다니는 “패키지”에 가깝습니다.
EU 규제가 의미하는 것: 노선이 곧 규제다
SAF 이슈가 커진 결정적 이유는 “좋아 보이니까”가 아니라 의무화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유럽은 환경 규제가 빠르게 제도화되는 편이라, 유럽으로 들어가는 노선을 가진 항공사·공급사는 자연스럽게 영향권에 들어갑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국적이 아니라 운항 구간입니다. 유럽 노선을 운영하는 순간, 항공사는 연료 조달 방식과 비용 구조를 다시 계산해야 하고, 공급 측(정유/에너지 기업)은 “기존 항공유만 잘 팔면 끝”이 아니라 SAF 대응 가능 여부가 거래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항공유 시장은 가격 경쟁에서 ‘인증 경쟁’으로 이동한다
SAF가 확대될수록 항공유 시장의 경쟁 축은 바뀝니다. 과거엔 단순히 가격과 안정적 공급이 핵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여기에 **지속가능성 기준(인증/추적/탄소회계)**이 추가됩니다. 같은 물량이라도 “어떤 원료에서 왔는지, 어떤 기준으로 인정받는지”가 계약의 일부가 되는 식이죠.
이 변화는 항공사뿐 아니라 정유·화학·바이오·물류·검증 체계까지 걸쳐서 산업을 묶어 움직이게 합니다. 쉽게 말해, SAF는 연료가 아니라 공급망 재설계 프로젝트입니다.
시장이 빨리 커지지 못하는 현실적 이유
SAF 확대를 가로막는 장벽은 기술보다 “시장 조건”에 더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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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가 부담: 아직은 생산·인증·원료 조달 비용이 높아, 일반 항공유 대비 비용 부담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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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 제약: 수요가 커지는 속도에 비해 공급망(원료/설비/인증)이 따라오지 못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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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의 속도 차이: 지역별로 도입 속도와 지원 방식이 달라, 기업이 장기 계획을 세우기 어렵습니다.
결국 단기적으로는 “성장성은 확실한데 변동성이 큰 시장” 성격이 강합니다.
한국에겐 ‘규제 대응’이 아니라 ‘수출 스펙’이 될 수 있다
한국은 항공유 관련 산업 기반이 있고, 대외 거래 관점에서도 규제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유럽 시장과 연결되는 공급망이라면, 앞으로는 단순 납품이 아니라 **SAF 대응 능력 자체가 경쟁력(스펙)**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정리하면, SAF는 친환경 트렌드로만 보기보다 “수출과 산업 구조” 관점에서 보는 게 실전적입니다. 늦게 움직이면 비용이 커지고, 빨리 준비하면 새로운 거래 조건을 선점할 여지가 생깁니다.
자주 묻는 질문
SAF를 쓰면 비행기의 탄소가 0이 되나요?
아니요. 핵심은 운항 중 배출이 ‘완전 0’이 되는 개념이 아니라, 연료의 생산·조달 과정까지 포함한 탄소 영향(생애주기 관점)을 낮추는 방향으로 설계된다는 점입니다.
항공기는 왜 전기화가 더딘가요?
무게 대비 에너지 밀도, 장거리 운항 조건, 안전 규격이라는 장벽이 동시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연료 체계 혁신이 더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큽니다.
SAF가 커지면 정유사는 무조건 불리한가요?
꼭 그렇진 않습니다. 기존 생산·유통 역량을 활용해 전환에 성공하면 오히려 새 시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관건은 설비 전환, 원료 확보, 인증 대응입니다.
결론
탄소중립은 항공유 시장에서 “선택지”를 늘리는 수준을 넘어, **새 표준(SAF 중심의 조달 조건)**을 만들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항공사도 연료를 ‘싼 것’이 아니라 ‘기준을 충족하는 것’으로 사야 하는 시대가 열릴 수 있고, 공급 산업도 같은 기준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큽니다.